최근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정치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거대 여당의 전당대회를 둘러싼 중앙 정치의 권력 셈법부터, 민선 9기 출범을 맞이한 파주시의 시장실 이전과 산하기관장 인사 잡음설에 이르기까지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재개발(건축)의 뉴(new)정치’와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짓는 ‘온고지신의 실용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의 국면에서 유시민 작가가 던진 이른바 ‘증축·재건축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재건축)’의 방식은 선명하고 통쾌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극심한 소음과 분진, 그리고 공동체의 일시적 파괴를 동반한다. 반면 기존의 골조를 유지하며 필요가치를 더하는 ‘증축’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이자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재명 대통령과 파주시정을 책임진 손배찬 시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궤적을 억지로 지우는 이분법적 청산이 아니라 ‘실용주의 관점에서 시민에게 진짜 필요한 정치를 보여주는 제3의 길’이다.
중앙 정치의 딜레마 -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닌, 민주당의 이재명이어야 한다”
과거 내란범 윤석열은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사랑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발화자의 의도와 그가 초래한 참담한 현실과는 별개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깨어 있는 시민과 당원들의 마음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필자 또한 민주당의 중도 좌파적 가치를 실현하는 시스템과 공당의 조직에 충성할 뿐, 권력을 쥔 특정인이나 대통령 개인에게 맹종하지 않는다.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켜낸 것은 ‘민주당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이재명’이지, 결코 누군가에게 사유화된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거대 여당 내부를 보면,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민주 없는 민주당”이라는 뼈아픈 탄식이 터져 나온다. 대선 당시 절박했던 검찰 개혁 공약 등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눈보라 치는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흔들었던 지지자들은 배신감과 허탈함에 빠져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룰 세팅과 인물을 둘러싼 갈라치기는 도를 넘었다. 평생 당을 위해 헌신한 동지를 향해 ‘역적’이라 칭하고, 2대 1, 3대 1의 집단 폭행과도 같은 멸칭과 언어폭력이 난무한다. 이를 바라보는 ‘서글픔’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넘어, 동지애를 상실하고 소모적 정쟁에 빠진 당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인간 이재명의 60년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가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유시민 작가의 뼈있는 당부를 새겨야 한다. 권력을 쥔 지금의 행보가 ‘결국 내가 합니다’라는 오만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결국 국민이 합니다’라는 그 절박했던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 이재명 대통령은 "2021. 3. 한 언론 인터뷰 중에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찬양하지 말고, 주권자의 삶을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써달라는 당부의 글이 담겨 있다. 특히 "필요한 도구로 유용하게 쓰시되 못쓰게 되면 가차없이 대체하시기를", "지지자는 정치인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지'이지요"라는 문구를 통해 지지자들을 동등한 주권자이자 동지로 대우하는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
파주시의 화두 - 작위적 인적 청산과 오만한 ‘원님 정치’는 민의를 왜곡하는 구태
중앙 정치의 이면에서 목도한 딜레마와 민주주의의 엄중한 원칙은 파주시라는 지역 사회의 거울 위에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민선 9기 손배찬 시장의 취임을 전후로 불거진 ‘성급한 시장실 이전’ 논란과 ‘산하기관 및 개방직 인사들의 임기’ 갈등설은, 이제 단순한 행정적 마찰을 넘어 권력의 본질을 대하는 철학과 관점의 문제로 발전했다.
우리는 파주가 지닌 권력 지형의 특수성을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보수에서 진보로 국가 권력의 축이 완전히 이동한 중앙 정부와 달리, 파주의 행정 권력은 같은 이념적 지향점을 공유하며 어제까지 한솥밥을 나누던 동지들 사이에서 선장만 교체된 양상에 가깝다. 적대 세력 간의 승리 전리품 분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인위적으로 편을 가르고 무리한 청산을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 명분도, 행정적 실리도 잃는 하책(下策)이다.
취임 초기, 손 시장이 새로운 시정 철학을 구현하고자 조직 개편을 구상하는 것은 시정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자리를 신설하려는 이른바 ‘위인설관(爲人設官)’ 식의 개편이 단행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단지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나, 만에 하나 측근을 심기 위해 무리하게 시스템을 뒤흔든다는 인상을 준다면, 이는 실용주의 행정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뼈아픈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러한 세간의 우려마저 투명하게 불식시키고, 오직 시민의 복리와 행정의 효율만을 중심에 두는 지도자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의 역사적 유산 위에 굳건히 서 있듯, 손배찬 시장 역시 ‘손배찬의 파주시’가 아니라 ‘파주시 범진보 진영이 빚어낸 손배찬’임을 결코 망각해선 안 된다. 주권자인 파주시민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한 까닭은 시민의 삶을 보듬고 지역 사회의 도약을 이끌어 달라는 지엄한 명령이지, 과거 조선시대 사또나 수령처럼 눈에 거슬리는 이를 치죄(治罪)하듯 솎아내고 그 자리에 측근을 앉히라는 면죄부가 아니다. 적법한 공모 절차를 거쳐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묵살한 채, 작위적인 공간 이전과 인위적인 인적 청산을 압박하는 것은 주권자의 뜻을 왜곡하는 낡은 ‘원님 정치’의 폐단일 뿐이다.
세간에 흔히 회자되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은, 새로운 시정 철학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조직의 의식과 체질을 혁신하라는 본질적인 당부이지 결코 인위적이고 폭력적인 숙청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지금 파주시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무자비한 '재개발식' 정치 보복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하는 '실용적 행정'이다. 합법적 절차를 존중하고 동지적 자산을 넉넉히 품어 안으며, 옛것의 장점을 주춧돌 삼아 미래를 쌓아 올리는 순리적인 ‘증축’의 지혜가 참으로 요긴한 때다.
언론의 정도(正道)와 포용의 문화가 이기는 길이다
정치와 행정이 흔들릴 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역 언론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단순한 사실(事實) 보도를 넘어 실체적 진실(眞實) 규명을 업(業)으로 삼는 우리 언론인들은, 지역 사회에 다가오는 위기와 불합리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경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되어야 한다. 언론 스스로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조롱과 힐난만 일삼는 ‘용역 매체’나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교란하는 ‘촉탁 언론’이라는 참담한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만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 안팎에서 들리는 비판적 목소리들은 변화를 요구하는 경고등이다. 선명성과 권력에만 매몰된 작위적 재개발은 공동체를 황폐화하고, 원칙 없는 타협은 지지층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이재명 대통령과 손배찬 파주시장이 마주한 과제는 일맥상통한다. 권력은 주권자로부터 잠시 빌린 것일 뿐이라는 겸양을 바탕으로, 내부의 시스템과 원칙은 엄격히 세우되 사람을 품는 방식만큼은 넓고 유연해야 한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의 정신으로 안으로는 지지자와 시민의 신뢰를 두터이 하고, 밖으로는 새 정치를 넘어 ‘온고지신의 실용주의적 필요한 정치’를 보여줄 때, 비로소 진정한 대개혁과 안정적인 시정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붕괴와 파괴를 부르는 오만한 사또 정치를 경계하고, 시스템과 시민을 존중하는 포용 문화가 파주에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점이다.